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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스입니다.


화랑 더 비기닝 저도 즐겨보고 있는데요.

오늘은 화랑의 시대에 살았던 왕인 진흥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진흥왕은 역사책에서 많이들 봤죠. 진흥왕 가계도 역시 많이들 보았을텐데요. 

그 시절 신라는 가장 성대하게 발전을 하였습니다. 발전의 배경에는 당연히 화랑이 있었죠. 


진흥왕은 인재양성을 하기위해서 화랑도를 개편하게 됩니다. 또한 불교를 이용하여 사상적인 국가 통합을 완성짓게됩니다.




진흥왕의 가장큰 업적은 바로 한강유역의 차지(고구려)와 대가야 정복입니다.

이로써 신라는 가장 쌀 생산력이 좋은 토지를 차지하게되었고 향후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진흥왕은 신라의 전성기를 보낸 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이제 진흥왕 가계도를 살펴봅시다.

진흥왕은 아버지 갈문왕 어머니 지소태후로 알려져있습니다. (화랑에서도 지소태후가 나오죠. 지소태후 섭정이 초반 스토리의 주요 포인트입니다.)



진흥왕 가계도에서 나온 것 처럼 진흥왕의 아버지는 신라왕은 아니였습니다. 

갈문왕은 23대 왕인 법흥왕의 동생으로 진흥왕은 왕의 동생의 아들이 왕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흥왕의 가계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진흥왕은 자신의 재위 기간동안 2번의 태후의 섭정이 있었습니다.


먼저 보도태후의 섭정과 그 이후 지소태후 섭정이 있었습니다. 지소태후 섭정은 아들의 왕권을 강력하게 하기 위한 모습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화랑때문인데요. 



실질적으로 신라의 진흥왕을 키우게해준 화랑의 어머니가 지소태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2년간의 보도태후 섭정과는 달리, 지소태후 섭정은 무려 11년간 지속이 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화랑 더 비기닝은 그린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상대등의 대리청정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섭정은 법흥왕의 붕어때문인데요.

법흥왕 붕어(죽음)이후 왕에 오른 진흥왕이 15세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흥왕 가계도를 보면 수많은 후궁을 둔것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다행히 왕비의 차남이 신라 25대 왕을 이어가면서 후궁들 사이의 전쟁은 없었다고 봐야죠.





장남 동륜태자는 566년에 왕태자에 책봉되었으나 572년에 사망하여 왕위에 오르지 못하였고, 이에 차남이 왕이되었습니다. 왕위계승에 대한 문제는 전혀 없다고 봐야겠죠. 


이상 진흥왕 가계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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